2020년 자몽프로젝트 051영화제
'한 장 스토리' 공모전
본선진출작 - 우수작품상
"1층 할배"
글 : 진보라
-이마이 찍어도 되나? -예, 어르신. 얼마든지요. 근데... 얼마나 많이 찍으시게요? |
1.
부산 대신동의 빛바랜 붉은 벽돌 빌라 101호. 살림살이가 몇 없어 휑하니 넓어 보인다. 이곳에는 곧 팔순이 되는 1층할배가 홀로 살고 있다. 할배는 능숙한 솜씨로 스마트폰을 열고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클릭한다. 유행하는 셀카 어플로 사진도 찍어본다.
한편, 빌라 2층에는 1층할배의 단짝인 2층할배가 살고 있다. TV를 벗 삼아 식사하고 있던 2층할배.
띵동 하는 큰 소리에 놀라 쳐다보면,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깜빡거리고 있다. 폰을 열었다 닫았다 쩔쩔매더니 1층으로 내려가는 할배. “어이!”하고 문을 쿵쿵 두드린다.
유튜브를 보고 있던 1층할배는 와 또 왔능교? 하면서도 2층할배를 안으로 들인다.
2.
어느 날, 팔순을 앞둔 할아버지들을 방문하는 사회복지사. 어르신들의 생전 모습을 찍어서 보관했다가 사후 자식들에게 보여준다는 새로운 복지서비스를 소개한다. 듣자마자 그런 거 안 한다~ 치아라, 내는 됐다~ 마 하면서 거부하는 두 할배. 복지사가 좋은 사례들을 보여주지만 막무가내다.
3.
우중충한 하늘, 2층할배의 영정사진이 있는 장례식장 풍경. 진지한 얼굴로 들어서던 조문객들, 깜짝 놀란다. 결혼식장 동영상처럼 활기찬 할배의 생전 모습이 빔프로젝터로 비추어진다.
1층할배와 둘이서 장기 두는 모습, 산책하는 뒷모습, 자식들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읊어주는 모습.
영상 속 할배의 모습을 보면서 희미하게 미소짓는 가족들. 시락국을 먹고 있는 1층할배에게 다가가서 “고맙습니더.” 한다.
4.
(비하인드 스토리)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들어가는 1층할배. 스마트폰 학교 전단지를 보고 찾아왔다면서 직원에게 내민 포스터에 억지로 잡아 뺀 압정 흔적이 선명하다. <유튜브 1일 학교> 모집대상: “누구나”
강의실에 들어가려던 할배. 둘러보니 5060 자식 세대뿐이라 나가려는데 사회복지사가 멈춰 세운다.
할배의 수준에 맞춰 특별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복지사.
-이마이 찍어도 되나?
-예, 어르신. 얼마든지요. 근데... 얼마나 많이 찍으시게요?
1층할배, 셀카를 찍어 보는데 초점이 나가고 엉뚱한 곳을 찍어댄다.
마침내 화면 가득히 담기는 할배의 얼굴. 성공하자 용기를 얻은 할배, 2층할배도 찍어준다.
빌라를 나서면서 또 한 컷, 동년배 노인들이 모인 용두산 공원에서도 셀카 삼매경이다.
솜사탕을 하나 주문한 뒤 이번에는 영상촬영 버튼을 누르는 할배. 잇몸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