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051영화제는 시민이 출품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화감독이 직접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2020년 자몽프로젝트 051영화제
'한 장 스토리' 공모전
본선진출작 - 최종선정작
"껌 파는 소년을 위하여"
글 : 최병덕
나는 들것을 가로막는 소년을 끌어당겨 깊게 끌어안는다. 소년은 내 품 안에서 분노 대신 깊은 울음을 터뜨린다. 내 품 안에서 연신 “죄송합니다” 말하는 소년을 토닥이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소년의 울음은 점점 잦아들고 동생을 실은 119구급차를 바라보는 껌파는 소년의 얼굴은 한층 의연해 있었다. |
부산역에서 서울행 KTX를 끊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삼공어묵을 긴 줄을 서서 한 세트를 샀다. 기차 시간까지 30분의 여유가 있어 대합실을 나와 부산역 앞 흡연실에 들른다.
담배 한 대를 피우는데 왠 아저씨가 8살 남짓한 소년한테 무슨 껌 한 통이 3000원이냐고 어디서 사기 치냐 소란을 피운다. 소년은 동생이 배고파서 파는 거라지만 아저씨는 구라치지 말라며 더욱 언성을 높인다. 소년은 비싸면 안사면 될 꺼 아니냐며 씨발씨발 욕까지 해대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제야 소년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검정 슬리퍼에 남루한 복장을 한 소년의 동공은 약을 한 듯 심하게 떨렸고 몸에선 알코올 냄새가 풍겨왔다. 소년은 시선을 피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그냥 지나쳐 다른 코너의 사람들에게로 다가간다. 거기서 소년은 집에 가는 버스비가 떨어졌다면서 다른 방법으로 동냥을 하고 있었다.
기차 시간이 다 돼서 KTX 개찰구를 들어갈 때 나는 그제야 삼공어묵 쇼핑백을 흡연실에 놓고 온 걸 알았다. 뒤돌아간 흡연실엔 아무것도 없었고, 삼공어묵 가게 줄은 손님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 하고 서둘러 개찰구로 가는 길에 아까의 껌 팔던 소년을 다시 마주쳤다. 소년의 오른 손엔 내 것인 삼공어묵 쇼핑백이 들려져 있었다. 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 소년은 부산역 뒤편으로 달아났고 나는 무슨 영문인지 기차 시간은 잊은 체 소년을 뒤따라갔다.
소년은 부산역 뒤편 재개발을 기다리는 허름한 동네의 막다른 골목 끝 파란지붕 집에서 사라졌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엔 소년의 검정 슬리퍼와 분홍색 신발이 놓여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엔 내 것인 어묵 박스가 뜯긴 체 놓여있었고 안쪽 방문은 열려있었다. 열린 방문 안에 소년은 방바닥 이불 위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침묵으로 앉아있었다. 갑자기 소년은 누군가를 일으키며 소리를 지른다. 일어나라고, 너 좋아하는 어묵 사왔으니 눈뜨고 먹으라고. 씨발. 소년이 일으키는 누군가는 소년보다 더 어린 여자아이로 기절한 듯이 보였다. 소년은 쓰러진 소녀의 입에 어묵을 넣으려 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황한 나는 소년을 소녀와 떼어내 거실로 데려온다. 소녀는 이미 죽은지 오랜 상태로 부패해있었다. 그때 119구급차와 경찰, 그리고 복지담당 공무원이 들어온다. 이웃의 신고를 받고 담당 공무원이 경찰한테 연락해서 그제야 소년의 집에 방문한 것이란다.
들것에 실려 소녀의 시체가 나오자, 소년은 내 동생은 살아있다며 왜 데려가냐고. 내가 지킬 수 있다고 당신들이 지금까지 도와준 게 뭔데 이제 나타나서 왜 이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나는 들것을 가로막는 소년을 끌어당겨 깊게 끌어안는다. 소년은 내 품 안에서 분노 대신 깊은 울음을 터뜨린다. 내 품 안에서 연신 “죄송합니다” 말하는 소년을 토닥이면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소년의 울음은 점점 잦아들고 동생을 실은 119구급차를 바라보는 껌파는 소년의 얼굴은 한층 의연해 있었다.
최병덕
해운대 모래를 맨발로 밟고 그리운 얼굴의 눈동자를 마주보면서
침튀기며 재잘재달대기. 마흔에 들어선 요즘 내가 하고싶은 것들.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 최병덕 님의 원작 '껌 파는 소년을 위하여'를 바탕으로 한
샌드아트
▼ 최병덕 님의 원작 '껌 파는 소년을 위하여'를 바탕으로 한
윤재호 감독의 '껌 파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