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자몽프로젝트 051영화제
스토리부문 수상작 - 우수상
"라면이나 끼리먹지"
글 : 전흥윤
#1
나는 배달의 민족이다.
아내가 몇 년 전 집을 나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두 아이와 병든 노모를 모셔야하는 고달픈 한부모 가장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달린다.
치킨과 맥주, 짜장면과 탕수육을 싣고...
교통신호는 아예 무시, 정차된 차 사이는 뱀장어처럼 빠져나간다.
그래야 목에 풀칠이라도 한다.
몸이 재산이다. 쓰러지면 끝이다.
#2
비 내리는 오후,
두 건의 주문 콜을 받고 불이 나게 달렸다.
숨이 턱에 차 간신히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는 11층, 12층...
이럴 때는 할 수 없이 계단으로 달린다.
7층을 한 걸음에 오르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이 비오듯 하는데.
문이 열리며 가슴을 후벼 파는 쉰 목소리
‘아씨, 이제 오면 우짭니꺼? 배곱아 뒤지겄네...’
가방 든 손이 부르르 떨리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 비도 오고 길도 많이 막혀서...’
‘이리 해가 먹고 살 수 있습니꺼. 내 별점 테러 할낍니더’
쾅 닫힌 문을 바라보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콱 막혀
비에 젖은 생쥐마냥 터벅터벅 계단을 걸어내려 왔다.
#3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아파트 4층.
치킨 한 마리에 콜라는 서비스.
‘띵동’ 벨을 누르자 빼곰이 얼굴을 내민 남자아이가
초록색 카드를 내밀며 하는 말
‘아저씨 혹시 이 카드도 되나요?’
‘아동급식카드? 이건 처음이라... 줘 봐....’
카드단말기에 넣자 ‘결재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동시에 또 다른 배달 콜이 울려 나는 약간 초조해져서 빠르게 말했다.
‘야, 이건 안되는데. 다른 카드나 현금 없어?’
남자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지른다.
‘안된다잖아. 어떻게 된거야?’
그러자 뒤에서 더 작은 여자아이가 슬며시 얼굴을 보이며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된다고 해서 시켰는데...’
나는 순간 짜증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빨리 계산해야지’
남자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저씨 죄송한데요. 이거 취소 안되나요?’
‘이 카드 밖에는 없는데...’
나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이렇게 소리쳤다.
‘야 너희들 지금 뭐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 어른 없어?’
그러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왜 그러슈. 무슨 일인데...’ 하는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할머니 한 분이 엎드린 채 머리를 내밀었다.
‘할머니, 얘들이 치킨을 시켰는데 카드가 안되는 기라요. 어떻게 하죠?’
할머니는 애들을 한 번 둘러보고 ‘을만데요?’
‘보자, 만 칠천 원입니다’
할머니는 방바닥에 앉아 옷 사이를 뒤적이더니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나도 이거 밖에 없는데...’
그 사이 배달 콜이 두 번 더 울렸다.
순간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아 짜증나. 이럴 거면 뭐하러 치킨을 시켜 라면이나 끼리먹지’
#4
자정이 훨씬 넘어 쓰러질 듯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집안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책과 옷들...
냉장고 문을 열고 허기진 배를 물 한 잔으로 채우고 씽크대를 보니
먹다 남긴 라면 그릇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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