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로드展: 부산, 함께 걷는 길』
- 부산복지 인물 사진 -
부산복지 인물사진은 1950~1980년대 부산의 복지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헌신하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킨 이들의 정신을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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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보다는 인술, 자비의 의사,
김동수 (1907~2004)
출생과 배경
평양에서 기독교 집안의 맏이로 태어남.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란 와 부산진해수병원에서 의사의 길을 걸음. 이후 부산대 의대 교수로 부임해 장기려 박사와 교류하며 후학을 양성함.
의료 활동의 시작
내분비학이 분화되기 전부터 갑상샘과 당뇨병 연구에 매진함. 1961년 대한핵의학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부산대 의대 동위원소실(현 핵의학교실) 초대 실장을 맡음. 1964년 ‘쉬한 증후군’ 관련 논문을 국제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하며 주목받음.
헌신과 영향력
1966~1992년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헌신함. 1992년 퇴직 후 ‘김동수 내과’를 개원해 내분비·갑상 샘 질환 치료에 있어 전국적 명성을 얻음. 또한 부산생명의전화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82년에는 청광노인요양원을 설립 하는 등 사회복지에도 앞장섬. 그의 부인이었던 이정숙 여사 역시 1957년 동인어린이집을 설립하는 등 지역 복지 발전에 기여함.
말씀과 유산
의학자로서 핵의학·내분비학의 초석을 놓고, 사회운동가로서 이웃과 사회에 헌신함. 제자들이 “하늘 같은 스승”이라 회고할 만큼 깊은 존경을 받으며, 부산과 한국 의료·복지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김.
사진 출처: 부산일보 2023년 5월 30일자 「참 사람, 김동수 박사님 영전에 올립니다」
'근대 의료와 여성 교육의 씨앗을 심은 선교사,
매혜란 (Margaret Mackenzie, 1914~1990)
출생과 배경
호주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장녀로, 의학을 공부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됨.
의료 선교의 시작
1952년 동생 매혜영과 함께 부산에 돌아와 유치원 건물을 빌려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함.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시작함.
헌신과 영향력
“돈 없는 사람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환자 차별 없는 진료를 실천함. 무료 진료와 함께 여성들을 위한 간호학교(현 일신간호학교)를 설립해 수백 명의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전국 무의촌에 파송함으로써 지역 보건 향상에 크게 기여함.
말씀과 유산
병원 완공식에서 “건물이 너무 좋아서 가난한 이들이 올 엄두를 못 낼까 걱정된다”는 겸손한 말을 남김. 평생 무료 진료로 헌신하며 한국 의료선교의 길을 연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서울경제신문 2012년 4월 6일자 「故 매혜란 여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부산 최초의 아동 양육시설 설립자,
안음전 (1900~1969)
출생과 배경
1900년 출생. 한국 여성 사회사업의 초기 세대 중 한 사람으로,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함.
사회사업의 시작
부산 YMCA의 전신인 대한기독교청년회(YMCA) 부산지회 활동을 하며 지역사회 봉사를 시작함. 이후 1928년 영락보육원의 전신인 보육시설을 설립해 부산 최초의 아동 양육시설을 만듦.
헌신과 영향력
전쟁과 가난 속에서 소외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보호와 교육의 장을 마련함. 부산 여성복지의 기초를 닦는 중요한 역할을 함.
말씀과 유산
부산 최초의 여성 사회사업가로서, 부산 지역 여성복지와 아동복지의 뿌리를 내린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복지타임즈 2023년 10월 4일자 「복지인물사- 새들원 설립자」
'독립운동가이자 여성복지의 선구자,
양한나 (1909~2008)
출생과 배경
1909년 출생. 일찍이 국내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 부산에서 여성과 청년 운동을 이끔.
사회사업의 시작
해방 후 부산에서 YWCA 창립을 주도하며 여성과 청년 운동을 전개함. 이후 1950년 부산 보수동 자택에 ‘자매여숙’을 설립해 전쟁고아와 빈곤 여성들을 위한 보육원 및 기술학교를 운영함. 1957년부터 정신질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이후 정신요양시설인 자매정신요양원으로 전환됨.
헌신과 영향력
여성 권익 증진, 아동 보호, 정신장애인 돌봄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헌신함.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 사회사업을 통해 해방 이후 지역사회를 변화시킴.
말씀과 유산
여성·아동·장애인 복지의 선구자로서, 복지와 민주주의, 인권을 잇는 다리를 놓은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복지타임즈 2024년 3월 21일자 「복지인물사- 정신장애여성의 복지를 개척한 양한나」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1911~1995)
출생과 배경
평안남도에서 출생.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뜻을 품었으며 의학을 공부해 외과 의사가 됨.
의료 선교의 시작
6·25 전쟁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와 복음병원 설립에 참여함. 1968년 한국 최초의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해 서민 의료보험 제도의 문을 열었음.
헌신과 영향력
평생 환자에게 수술비와 진료비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난한 이들에게는 “평생 주치의”로 기억됨. 청십자의료보험은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의 초석이 됨.
말씀과 유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의료는 곧 사랑과 나눔이라는 신념을 남김. 한국 의료복지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새김.
사진 출처: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
'한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리차드 위트컴 (Richard S. Whitcomb, 1894~1982)
출생과 배경
미국 출생. 미군 장성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한국과 인연을 맺음.
사회사업의 시작
전쟁 직후 부산에 머물며 수많은 고아와 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에 직접 나섬. 영락원 등 고아원 지원에 헌신함.
헌신과 영향력
‘한국 고아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군인 신분을 넘어 인도주의적 활동에 헌신함. 전후 폐허 속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심음.
말씀과 유산
한국과 미국을 잇는 우정과 사랑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지금도 부산 시민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음.
사진 출처: 매일경제신문 2022년 11월 8일자 「‘전쟁고아의 수호천사’ 故위트컴 장군, 1등급 국민훈장 받는다」
『복지로드展: 부산, 함께 걷는 길』
- 부산복지 인물 사진 -
'의술보다는 인술, 자비의 의사,
김동수 (1907~2004)
출생과 배경
평양에서 기독교 집안의 맏이로 태어남.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란 와 부산진해수병원에서 의사의 길을 걸음. 이후 부산대 의대 교수로 부임해 장기려 박사와 교류하며 후학을 양성함.
의료 활동의 시작
내분비학이 분화되기 전부터 갑상샘과 당뇨병 연구에 매진함. 1961년 대한핵의학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부산대 의대 동위원소실(현 핵의학교실) 초대 실장을 맡음. 1964년 ‘쉬한 증후군’ 관련 논문을 국제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하며 주목받음.
헌신과 영향력
1966~1992년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과 연구에 헌신함. 1992년 퇴직 후 ‘김동수 내과’를 개원해 내분비·갑상 샘 질환 치료에 있어 전국적 명성을 얻음. 또한 부산생명의전화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82년에는 청광노인요양원을 설립 하는 등 사회복지에도 앞장섬. 그의 부인이었던 이정숙 여사 역시 1957년 동인어린이집을 설립하는 등 지역 복지 발전에 기여함.
말씀과 유산
의학자로서 핵의학·내분비학의 초석을 놓고, 사회운동가로서 이웃과 사회에 헌신함. 제자들이 “하늘 같은 스승”이라 회고할 만큼 깊은 존경을 받으며, 부산과 한국 의료·복지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김.
사진 출처: 부산일보 2023년 5월 30일자 「참 사람, 김동수 박사님 영전에 올립니다」
'근대 의료와 여성 교육의 씨앗을 심은 선교사,
매혜란 (Margaret Mackenzie, 1914~1990)
출생과 배경
호주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장녀로, 의학을 공부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됨.
의료 선교의 시작
1952년 동생 매혜영과 함께 부산에 돌아와 유치원 건물을 빌려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함.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시작함.
헌신과 영향력
“돈 없는 사람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신념 아래 환자 차별 없는 진료를 실천함. 무료 진료와 함께 여성들을 위한 간호학교(현 일신간호학교)를 설립해 수백 명의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전국 무의촌에 파송함으로써 지역 보건 향상에 크게 기여함.
말씀과 유산
병원 완공식에서 “건물이 너무 좋아서 가난한 이들이 올 엄두를 못 낼까 걱정된다”는 겸손한 말을 남김. 평생 무료 진료로 헌신하며 한국 의료선교의 길을 연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서울경제신문 2012년 4월 6일자 「故 매혜란 여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
'부산 최초의 아동 양육시설 설립자,
안음전 (1900~1969)
출생과 배경
1900년 출생. 한국 여성 사회사업의 초기 세대 중 한 사람으로,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함.
사회사업의 시작
부산 YMCA의 전신인 대한기독교청년회(YMCA) 부산지회 활동을 하며 지역사회 봉사를 시작함. 이후 1928년 영락보육원의 전신인 보육시설을 설립해 부산 최초의 아동 양육시설을 만듦.
헌신과 영향력
전쟁과 가난 속에서 소외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보호와 교육의 장을 마련함. 부산 여성복지의 기초를 닦는 중요한 역할을 함.
말씀과 유산
부산 최초의 여성 사회사업가로서, 부산 지역 여성복지와 아동복지의 뿌리를 내린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복지타임즈 2023년 10월 4일자 「복지인물사- 새들원 설립자」
'독립운동가이자 여성복지의 선구자,
양한나 (1909~2008)
출생과 배경
1909년 출생. 일찍이 국내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후 부산에서 여성과 청년 운동을 이끔.
사회사업의 시작
해방 후 부산에서 YWCA 창립을 주도하며 여성과 청년 운동을 전개함. 이후 1950년 부산 보수동 자택에 ‘자매여숙’을 설립해 전쟁고아와 빈곤 여성들을 위한 보육원 및 기술학교를 운영함. 1957년부터 정신질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이후 정신요양시설인 자매정신요양원으로 전환됨.
헌신과 영향력
여성 권익 증진, 아동 보호, 정신장애인 돌봄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헌신함.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로서, 사회사업을 통해 해방 이후 지역사회를 변화시킴.
말씀과 유산
여성·아동·장애인 복지의 선구자로서, 복지와 민주주의, 인권을 잇는 다리를 놓은 인물로 기억됨.
사진 출처: 복지타임즈 2024년 3월 21일자 「복지인물사- 정신장애여성의 복지를 개척한 양한나」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1911~1995)
출생과 배경
평안남도에서 출생.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는 뜻을 품었으며 의학을 공부해 외과 의사가 됨.
의료 선교의 시작
6·25 전쟁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와 복음병원 설립에 참여함. 1968년 한국 최초의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해 서민 의료보험 제도의 문을 열었음.
헌신과 영향력
평생 환자에게 수술비와 진료비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가난한 이들에게는 “평생 주치의”로 기억됨. 청십자의료보험은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의 초석이 됨.
말씀과 유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의료는 곧 사랑과 나눔이라는 신념을 남김. 한국 의료복지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새김.
사진 출처: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
'한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리차드 위트컴 (Richard S. Whitcomb, 1894~1982)
출생과 배경
미국 출생. 미군 장성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한국과 인연을 맺음.
사회사업의 시작
전쟁 직후 부산에 머물며 수많은 고아와 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에 직접 나섬. 영락원 등 고아원 지원에 헌신함.
헌신과 영향력
‘한국 고아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군인 신분을 넘어 인도주의적 활동에 헌신함. 전후 폐허 속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심음.
말씀과 유산
한국과 미국을 잇는 우정과 사랑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지금도 부산 시민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음.
사진 출처: 매일경제신문 2022년 11월 8일자 「‘전쟁고아의 수호천사’ 故위트컴 장군, 1등급 국민훈장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