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무임승차 논란, ‘진짜’ 노인은 누구인가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하철 무임승차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한국은 어느 연령대보다 노인이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현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 노인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 살부터 노인일까?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떠도는 질문이다. 2023년 초 노인 연령과 관련된 논의가 다시금 뜨거워졌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제기한 지하철 무임승차와 적자 누적이 논쟁에 불을 지폈다.
제도적으로 통용되는 ‘노인 연령 기준’은 만 65세이다.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은 경로우대 적용 나이를 65세부터로 규정했고, 대통령령에 따라 1984년부터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었다. 국민연금·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도 대부분 65세를 기준으로 한다. 이처럼 65세를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제도의 기원은 1889년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세계 최초의 공적 노령연금 제도로 알려진다. 당초 정해진 수급 연령은 70세였는데 1916년에 이르러 65세로 하향되었다. 1950년 유엔이 고령 지표를 만들며 이 사례를 참고했다.
짧게 보면 40여 년, 길게 보면 100여 년 전 세워진 이 노인 기준이 일대 도전을 맞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가 시작된 1984년 65세 이상 인구수는 전체 인구의 4.1%(167만명)였다. 2022년에는 이 비율이 17.5%(901만명)로 늘어났다. 65세 이상 인구는 계속 증가해 2024년에는 1000만명에 달하고 2025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1984년에는 한국인 25명 중 한 명이 노인이었다면 2025년 들어서는 5명 중 한 명이 노인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65세 미만 세대가 마련한 재원으로 65세 이상 인구를 부양하는 공적·사적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가장 가시적인 사례다. 공공성이 최우선 가치인 대중교통이라는 점에서 지하철의 만성 적자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고 적자의 원인을 모두 무임승차로 돌릴 수도 없지만, 운영기관 입장에서 급격한 노령인구 증가는 고민스러운 현상이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울지하철 노선 대부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영업손실은 5324억원, 노인 무임승차 비용은 3046억원이었다.
1월3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재 지자체가 부담하는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을 중앙정부에서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또 “백세 시대에 미래 세대에게 버거운 부담을 지게 할 수 없다”라며 “고령사회에서 사회복지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좀 더 직접적으로 연령 기준 변경을 시도하고 나섰다. 대구도시철도 무임승차 기준을 매년 1세씩 70세까지 올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신 대구시의 버스 무임승차 연령인 75세는 같은 방식으로 매년 1세씩 내려 70세로 기준을 통일하겠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두고 불거졌지만 이는 앞으로 노인복지나 공적 소득이전 성격을 띤 여러 제도에 걸쳐 벌어질 논란의 축소판에 가깝다. 이때 급속한 고령화 추세와 더불어, 다른 한편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조건이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이다. 노인 인구(65세 이상) 가운데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노인 빈곤율이 2020년 기준 한국은 38.9%였다. 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와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높다. 어느 연령보다도 노인이 가난한 한국 사회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자는 논의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흐름이 있다. 몇 년 전부터 ‘65세 컷’을 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 65세 이상 노인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노년내과 전문의인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공중보건, 교육, 경제발전의 혜택을 받은 이 세대는 신체 기능적으로도 더 건강하고 경제력이나 자산 축적 면에서도 이전 세대와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한순간을 찍은 사진처럼 과거 모습이 계속되리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면 여러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이를 ‘스냅숏의 오류’라고 불렀다.
조사 통해 본 ‘노인의 특성 변화’
정부는 2008년부터 3년마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노인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2020년)에서는 다방면에 걸쳐 노인의 특성 변화가 확인된다. 2008년 고졸 학력을 가진 노인은 전체 대비 10.5%였으나 2020년 이 비율은 28.4%로 높아졌다.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답한 노인은 2008년 24.4%에서 2020년 49.3%로 증가했다. 노인의 연간 소득은 2008년 700만원에서 2020년 1558만원으로 2배 이상이 되었다. 이 같은 추세는 노인 빈곤율에서도 나타난다. 국제 비교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2012년 45.4%였던 노인 빈곤율은 매년 차츰차츰 낮아져 2020년 38.9%로 집계되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는 결론에서 “이전 이뤄진 조사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면서도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젊은 노인 세대의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노인의 삶 전 영역에서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해석된다”라며 사회참여와 건강은 75세 전후, 기능 상태는 80세를 전후로 하여 특성 변화가 보이는 등 현 노인 세대를 동일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는 74.1%가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워런 샌더슨 뉴욕 주립대학 교수는 보고서 ‘나이와 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age and aging)’에서 노인 연령 기준을 기대여명이 15년 남은 시기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접근법을 한국 기대수명에 대입해 정희원 교수가 그린 표가 위 〈그림〉이다. 1991년 노인 기준은 65세가 적합했지만 2021년은 72세, 2030년 이후로는 77세에 가까워져야 한다(노인의학에서는 장기적으로 노쇠를 겪기 시작하는 나이가 77세로 수렴할 것이라고 본다). 정희원 교수는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되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예를 들어 연간 기대수명 증가 속도(약 0.33년)에 맞춰 해마다 4개월씩 기준을 상향하는 것이다.
다만 정 교수는 지하철 무임승차와 노인 연령 문제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해 이용량이 많아지면 덩달아서 신체 활동도 늘어난다. 노쇠를 지연시키고 노인 돌봄 요구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보건의학적으로도 비용보다 장점이 클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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