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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아이도 알 수 없는 그 속마음…“대신 말해주고 싶었어요”

[한겨레S] 인터뷰 김지호 언어치료사
언어장애 어린이 18년간 치료
말더듬·자폐·무발화 등 사례 모아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책 펴내
“본질 보는 능력, 어른들 능가해”

 

아이들을 만나면서 저도 강제로 어른이 됐어요. 누구나 가슴에 담아둔 말들이 있고, 말하고 싶은데 말 못하는 경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김지호(53)씨는 18년 동안 언어치료사로 일해왔다. 시종일관 냉철한 전문가의 ‘포스’를 보여주던 그는 의사소통이 힘든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동안 울었다. 몇번씩이나.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인터뷰실. 그가 말하기를 멈출 때마다 침묵이 흘렀지만 사위는 비언어적 이야기로 가득찼다. 울음을 받아 적을 수는 없었지만 기록할 수는 있다. 한 언어치료사가 18년간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목구멍으로, 소리로는 빠져나오기 힘들어 눈으로, 물이 되어 나왔을 것이라고.

 

“제가 우는 건, 아이들과 동일시해서 그래요. 마음속에 언어가 계속 쌓이는 경험을 저도 했는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예전의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전문가로서 과학과 이성으로 치료해야 하지만, 저라는 사람이 현장에서 사라질 수는 없거든요.”

 

언어치료사는 언어 발달이 늦거나 장애로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획을 수립해 치료한다. 상대의 언어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계획을 세우고 수업의 목표와 진행 방식을 정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치료사에게 때론 낭만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예측도 미래와 일치하지 않고, 그 불일치의 틈 안에 기적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말이 필요없는 곳

 

김지호씨는 최근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라는 에세이를 냈다. 책에는 치료사로서 만난 25명 아이들의 사연과 수업 내용을 담았다. 2005년부터 언어치료를 시작한 그는 2년 뒤부터 경기도 한 장애인복지관에 소속돼 가정으로 찾아가는 방문치료사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인치료나 집단치료를 하면서 언어발달 지체, 말더듬, 다운증후군, 중증 자폐성 장애, 무발화 등 다양한 사연의 아이들을 접했다.

 

“그 전까지는 출판편집자로 일하다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언어치료사가 됐어요. 누구에게나 이타심이 있는데, 그 마음이 발현될 수 있는 기회를 저는 만난 거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만난 아이들 90%가 장애아동이었다. 2~3살 영유아부터 18살 청소년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집안 사정과 장애 정도도 달랐다. 낱말 익히기, 말 속도 조절하기, 명사와 동사 배우기, 소리 내기 연습, 비언어적 표현 익히기 등 30~40분간 아이들과 수업하고 10분간 부모를 상담할 때마다 상대방과 긴밀하게 교감하고 때로는 인내했다. 아이들은 말보다 상대의 표정과 몸짓을 읽었으며, 의사를 표현하거나 아예 표현하지 못했다. 부모도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세상은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였다. 그곳에 함께 머물렀던 치료사는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적었다.

 

‘우주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거대한 침묵 그 자체인 곳에서 인간의 말은 무의미해. (…) 하지만 슬퍼하지 않아도 돼. 세이야, 우주에서 존재보다 중요한 건 ‘사건’이래. 우리가 만났던 일, 우리가 만나서 함께했던 일 같은 것 말이야.’

 

이 책의 백미는 아이들에게 쓴 편지다. 때로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잠언처럼 읽힌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평생…. (말을 잇지 못한 채 한참 운 뒤) 말이 마음에 쌓이면 병이 되잖아요. 아이들은 자기 뜻을 구어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줄게’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자기연민이 과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순간만큼은, 실제 교감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아를 돌보는 사람들

 

그가 만난 아이들은 언어뿐 아니라 다른 장애(수반장애)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07년부터 정부가 장애아동재활치료바우처사업을 실시하면서 언어치료가 대중에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치료사로서 현장은 아쉬움 투성이였다. 국가 보조는 차등 지급되었고, 소득을 엄밀하게 따졌다. 2~8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절약하려고 가족들은 티끌 만한 증명서라도 첨부하려 동분서주했다. 담당 공무원은 지원에 합당한지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가는 직접 서비스를 하기보다 복지시설 같은 ‘제3자’를 내세워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지금의 복지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했다.

 

“세금이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것도 문제지만, 돌봄 구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된 건 확실해요. 돌봄 현장의 많은 치료사, 사회복지사들이 젊은 여성들로 채워져 있어요. 저임금 노동인데다 비정규직이죠. 국가는 사회복지 최전선 맨앞에 젊은 여성들을 내세워 어려운 일을 감수하게 하죠.”

 

가정에서도 장애인은 “어머님들”이 전적으로 돌보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가 홀로 장애가 있는 자식을 온전히 책임지다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거듭 보았다.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24시간 딱 붙어 생활하고 감정적으로도 밀착해 있어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책임감 같은 것들이 막 덩어리로 이뤄져 못 견디는 분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해요. 아버지가 돌봄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에게 전가돼있다는 것을 엎을 만큼의 비율은 아니예요. 가족 안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지 논의가 더욱 많아져야 해요. 누구라도 혼자 휴식 없이 아이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어요.”

 

 

 

 

아이들에 대한 오해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언어적 소통에 훨씬 예민하다. 상대의 말투와 표정에서 많은 정보를 읽고 판단한다. 언어발달이 미약한 영유아는 비언어적 소통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김지호씨는 “언어보다 언어 이외의 정보값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문해력에 대한 견해도 남달랐다.

 

“메시지를 나눌 때 이모티콘을 쓰잖아요. 굳이. 이모티콘이 없으면 맥락에 따라 부정적인 게 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진다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더 뛰어나죠. 문해력과 관련된 어른들의 태도를 보면 인지학습, 성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직관적으로 뭔가 이해해요. 사안의 핵심, 본질을 보는 것은 기성세대를 능가합니다. 전달력도 뛰어나고. 다만 성인들의 문법이 아닌 거죠.”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경쟁에서 배제해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도 단견이라고 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은 더군다나 남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이겨보고, 지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했다. 아이들을 대변하듯 말하던 그는 문득 얼굴을 붉혔다.

 

“책을 냈다고 말하고 있는 게 부끄러워요. 제가 아니라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아이들이 있는데…. 책 제목처럼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가 명백히 있다는 것을, 대륙처럼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원래 있던 사람들이 낯선 존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최근 18년간 언어치료사로서 현장 경험을 접기로 했다. 당분간은 언어치료에 대한 학습, 실용서를 쓰거나 특수교육 관련 콘텐츠를 고민하는 데 더 비중을 둘 예정이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handicapped/10841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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