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그리고 산책>
이바구길을 걷다가 만나는 공동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나들이 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일교차가 심해서 봄느낌 강렬한 옷 입고 나풀거리다가는 감기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만 빼면말이다. 남들이 벚꽃놀이 가서 꽃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보고 있을 때,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요즘 핫하다는 이바구길을 거닐어보기로 한다.
168계단
산복도로를 대표하는 비탈길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동구 이바구길에 위치한 168계단이다. 계단의 수가 168개이고, 지상 6층 건물 높이라고 하니 그 위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계단 아래에 원래 3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식수로 쓰던 1개의 우물만 남아 있다. 물이 부족하던 그 시절 물을 받기 위해 그 경사진 계단을 오르내려 도착한 우물가는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연령대가 높은 주민들을 위해 계단 옆으로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오르내리기 편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주민들보다는 실상 관광객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듯 하다. 나는 동네 구경도 할겸 용감하게 내 두 다리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168도시락국
한참동안 168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도착하니 배가 슬쩍 고파온다. 폭풍검색으로 알아낸 동네 어르신분들이 함께 운영한다는 “168도시락국”집으로 향한다. 요즘에야 학교든 직장이든 급식과 구내식당이 잘 되어 있어, 큰맘먹고 소풍갈 때 외에는 도시락을 쌀 일이 없지만, 나 학교 다닐 적에는 여름엔 플라스틱 도시락통, 겨울에는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다녔었다. 그 중 베스트 반찬은 소시지. 최다 점유율을 차지하는 반찬은 볶음김치와 멸치볶음이었다. 그걸 다시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외부 인테리어는 곧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 컨셉이다. 누가 인테리어했는지 몰라도 꽤나 그럴듯하다. 외부와 다르게 내부는 깨끗하고 깔끔하되 옛날 소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4,000원짜리 도시락을 주문하면 시락국이 같이 나온다. 그런데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5,000원짜리 소고기국밥도 꽤나 맛있어보인다.
고전은 영원한법. 양철도시락에 담겨있는 옛날 도시락이 맛없을 리가 없다. 신나게 한그릇 뚝딱하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에 나오는데 카드결제하는 방법을 자필로 커다랗게 써놓은 걸을 보니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난다.
영진어묵&공감Cafe
얼마나 걸었을까. 이바구길 여기저기를 쏘다니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발견한 모던한 외부 인테리어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한 쪽에서는 향긋한 커피향이, 다른 한 쪽에서는 소리로 먼저 식욕을 자극하는 어묵이 튀겨지고 있다. 과연 이곳은 카페인가, 어묵가게인가.
작년 초에 개소했다는 이 곳은 현재 동구청과 동구노인복지관, 그리고 영진어묵간 상호협력하여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영진어묵&공감Cafe"를 운영중이다. 물론 지역의 어르신들이 크루로 활동중이시다. 비슷한 일을 하는 어느 젊은이 못지 않게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누구보다 희망과 열정이 가득해 보인다. 커피종류는 물론이고 어묵&칩스, 어묵탕, 고로케 등 다양한 메뉴들은 커피와 곁들인 간단한 디저트를 하려했던 처음의 계획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메뉴를 고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창가에 자리를 잡는 순간 창밖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부산항만과 영도까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수고한 내 다리에게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비싼 돈 주고 스카이라운지 갈 필요가 무예 있는가. 여기가 바로 공동체가 만든 천혜의 스카이라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