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제작부문 수상작은 일반시민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영화감독 및 관계자가 멘토링을 한 후 함께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2021년 자몽프로젝트 051영화제
영화제작부문 수상작 - 051영화상
"틈"
글 : 강유나
※ 출처 :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초청작 <She runs, Qiu Yang 감독> 스틸컷
며칠전, 양은 작업대 다리에 생긴 작은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경쓰이기 시작한 그때부터는 거슬려 미칠 지경이었다. 몇 번 공장의 관리실에 연락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관리자의 무성의한 대답뿐이었다. 양은 생각을 뒤로한 채 방을 나선다.
그녀는 돈을 벌어야했다. 언제 손이 짤릴지 모르는 커다란 칼날들 밑에서 양은 손을 바쁘게 움직여야했고,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옆사람들의 뜨거운 눈초리를 견뎌야 했다. 언젠가부터 불쾌할 정도로 추근덕거리는 대표의 편애에 생긴 동료들의 질타에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오늘도 양은 무서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에 힘겨움을 느낀다. 그녀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피해를 받을 뒷사람과, 손이 잘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힘겨움을 어느정도 숨기고 그녀는 기계의 부품처럼 일을 시작한다. 점심시간이다. 잠시동안의 자유를 얻은 양은 자신이 돈을 벌어야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고아에, 타국으로 온 자신, 낳게 된 아이. 그녀의 머리가 아파온다. 굳게 닫힌 공장 문 너머 닿을 수 없는 곳에 바다의 흔적이 보인다. 그녀는 한참을 회색빛 벽에 난 푸른 틈에 온 시선을 빼앗긴다. 그녀는 힘겹게 일어나 식당으로 간다. 자리에 앉지 않고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주변을 경계하다 음식들을 조심스럽게 챙긴다. 사람들을 의식하며 기숙사로 돌아간다.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며 우는 아이를 진정시킨 후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선다. 조용한 복도를 지나, 그녀는 사무실 한 켠에 있는 캐비넷에 아이를 숨긴다. 작은 여러개의 정사각형들 사이로 아이의 눈도 겨우 보인다. 양은 잠시만 있으라며 사무실에서 휴지를 챙겨 나간다.
화장실을 다녀온 척, 양은 자리에 앉는다. 문이 열릴 때마다 모든 신경이 문의 틈으로 향한다. 동료들이 하나 둘 자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동자도 갈 곳을 잃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안해하는 그녀를 신경쓰지 않고 동료들은 각자 일할 준비를 시작한다. 양은 아이를 찾으러 가지 못한 채 하나의 부품이 된다. 양의 손이 칼날 근처에서 머물다 한 마디 정도의 큰 상처가 난다. 그녀는 아픔도 못 느낀 채 시선이 문에 고정되고, 옆 사람의 외침에 작업물에 피가 묻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손을 대충 감싼다. 손을 대충 싼 채, 그녀는 아이를 데리러 아무도 없는 사
무실로 향한다. 캐비넷의 정사각형 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양이 떨리는 손으로 캐비넷을 열었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0분간의 쉬는 시간마다 양은 아이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더운 날씨에 그녀는 비오듯 땀을 흘리며 한참을 찾다 작업실로 들어간다.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양은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을 붙잡으며, 관리실로 가 CCTV를 봐달라며 관리자에게 애원한다. 관리자는 경찰이 오는게 아니면 볼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하고, 양은 애써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며 몇번 더 애원하다 냉담한 그의 태도에 문을 나선다. 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회색빛의 벽에 그녀는 숨막힘을 느낀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와 체념이 섞여있다. 땀 범벅이 된 양은 아무도 없는 작업대로 터덜거리며 돌아간다.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녀의 눈에 작업대의 틈이 더 커져 보인다. 균열들이 생기고, 그 균열은 마치 벌레가 갉아 먹듯이 커져간다. 양이 손을 대려다 조금이라도 충격이 가면 작업대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멈춘다.
▶ '강유나'님의 '틈'은 051영화제 영화제작지원부문에 선정되어 KRX 한국거래소/국민행복재단에서 300만원 영화제작지원을 받아 아래의 5분 1초 영화로 재탄생했습니다. 또한 부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인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박수민' 영화감독의 멘토링과 남진우, 김재식, 김효은, 박세형 예술인과의 협력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