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그리고 산책>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그리고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영국 총리인 처칠이 말했습니다. 오늘의 주제 이미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 8월의 산책, 주제는 ‘역사’입니다. 한국에 역사가 있듯 지역마다 기쁜 또는 슬픈, 한편으로는 아픈 역사를 지닌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어디를 여행하든 그 나라,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면 그 곳이 새롭게 보인다고 합니다. 그럼, 정작 우리가 사는 부산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찾아본 적 있나요? 오늘의 테마, ‘역사’입니다.
부산시민공원
△부산시민공원
출처 : 네이버
첫 번째 장소는 부산시민공원입니다. 이곳을 소개해 드리면 아마 “아! 그렇지”라는 반응과 “응? 왜?”라는 반응으로 극명하게 나뉠 것 같습니다. 최대 규모의 시민공원으로 볼거리도 많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장소에 아주 큰 부산의 역사가, 나아가 한국이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시민공원의 역사는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됩니다. 일제강점기 때 시민공원의 부지는 경마장으로 활용되다가 중일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경마장을 축소하고 10288기마부대를 설치하여 일본군 군수품 야적장(물품을 보관해 두는 곳)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럼 해방 이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이후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이권 다툼과 근방의 나라 간 세력싸움 등 많은 혼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남한은 미군에 의해 군정이 실시되었죠. 부산에도 미군이 주둔해있었습니다. 바로 하야리아 부대입니다.
△하야리아 부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에도 미군은 계속해서 한국에 주둔해있습니다. 한반도의 정세가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군 철수와 부대 터를 반환하라는 운동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는데요. 1995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은 ‘하야리아 땅 되찾기 운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대 터 반환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
10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지반환의 역사성을
시민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야리아 부지를 개방합니다.
- 부산시민공원 -
”
△부산시민공원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찹쌀패밀리의 쫄깃한 이야기
부산광역시는 하야리아 부대에 시민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여 2002년에 군부대 이전 적지활용 방안을 마련하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2011년에 강서구 녹산동으로 부대가 이전될 계획이었으나, 2004년에 협정이 개정되면서 2006년에 하야리아 부대 터는 부산시민에게 돌아왔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온 거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탄생한 공원이 부산시민공원입니다. 2011년 8월에 완공된 시민공원 8월의 산책과 딱 맞는 장소 아닌가요? 이제 곧 생일을 맞이하는 시민공원의 역사 어떠신가요?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모르는 분도 계시고 아주 잘 아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역사를 알고 그 장소를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이듯 시민공원을 갈 때 이 역사를 알고 계시면 더 많은 풍경이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합니다.
수안역_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수안역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밤눈이어두워님
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 이곳이 두 번째 소개 장소입니다. 정확히는 수안역 안에 있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입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건물이 아닌 역 안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이 설립된 역사에 담겨있습니다.
그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수안역을 건설을 위한 공사 중 건설현장에서 조선 전기 동래읍성의 해자가 발견되었습니다. (※ 해자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 못으로 만든 곳) 해자가 발견된 후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그때 임진왜란 당신의 수많은 인골과 무기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전쟁의 안타까움이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겁니다. 부산교통공사에서는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기고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자 수안역 안에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
임진왜란에 있어서 부산 지방의 전투는 중과부적으로 인한 도륙의 현장이었다.
일본 측 기록에서는 부산진성이 함락되자
‘군신의형제라 하여 여자를 비롯하여 아이들과 개·고양이 할 것 없이
피를 흘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살해하였다.’는 서술이 남아있다.
-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
”
이렇게 참혹했던 전쟁 속 많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에는 어떤 것을 전시하고 있을까요? 먼저 수자기(帥字旗)입니다. 이는 수안역 바닥에 장수를 뜻하는 장수 수(帥)가 적혀있는 깃발을 의미합니다. 수자기는 진중이나 영문의 뜰에 세우던 대장의 군기라고 합니다. 오로지 군영에서 조련할 때만 썼다고 합니다. 그럼 이 수자기가 전시되어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 싸운 동래부사 송상현과 조선 병사들의 용기와 항쟁의 정신을 상징하는 깃발이 수자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안역 바닥에 수자기를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하네요.
△수자기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우리나라의 모든 걷기, 자전거 여행
또 다른 전시는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물입니다. 해자의 모습을 만들어두었고 당시 발굴 된 유골의 모습도 다수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만들어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 걸쳐 우리나라를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년도는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있었음을 그 임진왜란 속에 이이와 곽재우 의병장 등 교과서에 수록된 인물들 외에 수많은 의병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수많은 시민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40계단_40계단 문화관
△40계단
40계단 문화관은 남포동에 있는 곳입니다. 아마 남포동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라면 40계단은 기억하겁니다. 이곳은 1950년 근현대사의 아픔 중 하나인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와 애환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전쟁 중 피난 온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을 만나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당시 40계단에서는 영도다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겹겹의 건물로 인해 보이지 않습니다.) 피난민들은 40계단에 기대고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랬었다고 합니다.
40계단의 역사가 된 한국전쟁, 6·25전쟁을 그저 넘겨서는 안 되겠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전쟁은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국에서의 전쟁입니다.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이 약속되었으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고 북에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 국토의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한지역은 독자적 공산정권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공산제국을 수립합니다. 이렇게 분단이 된 현실에 북한의 남침은 민족 간의 전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1950년 6월부터 휴전회담이 진행되기 시작한 1951년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이 다치고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그 후 휴전되기까지 2년이 더 걸리는 사이에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길고 긴 휴전은 1953년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사령관 간 휴전으로 한국전쟁, 6·25전쟁이 마무리됩니다,
△40계단
“
전쟁에 가족 전부를 잃었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데, 우리가 해야디요.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네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 -
”
참 아픈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근현대사의 역사 중 많은 아픔의 역사가 존재하지만 같은 민족 간의 전쟁만큼 아픈 역사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지 휴전국가입니다. 언제 전쟁이 다시 시작돼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지금 평화의 물결이 한반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만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이 평화의 물결이 계속되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다시 40계단에 집중해볼까요? 40계단에는 피난민들의 삶과 문화를 담은 역사를 알려주는 40계단 문화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2003년에 개관하였습니다. 일상 속에서 편안히 찾아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문화 소통 공간인 ‘생활문화센터’는 중장년층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어린 청년들과 학생에게는 과거를 선물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40계단의 형성 배경과 한국전쟁의 참상, 전쟁 중 피난민들의 삶을 전시하여 사람들에게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바라보듯, 역사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문화원은 40계단의 아픔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에서 희망을 찾은 민족의 모습도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40계단 문화관
그저 40개의 계단인 줄 알았던 곳에 이런 아픔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 가면 더 새롭게 보이겠죠? 문화원의 관람 시간은 평일 10:00 ~ 18:00 (월요일, 국경일, 명절 휴무), 주말 10:00 ~ 17:00 라고 하니 중구를 방문하시게 된다면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산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 적고 보니 평소의 내용보다 더 많았습니다. 장소와 장소의 역사, 그 역사에 얽힌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에 많은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은 참 묘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오늘의 주제가 여러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남았기를 바라며, 다음 산책은 밝고 신나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