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잊어버린 ‘주거 빈곤’의 의미
윤석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 대비 4분의 1 넘게 줄였다. 대신 공공분양 사업 예산을 크게 늘렸다. 윤석열 정부는 ‘무주택 서민’과 ‘저소득층’을 호환 가능한 개념으로 인식한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약 5조7000억원 깎아서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삭감된 예산을 일단 복구시켰으나, 최종적으로는 기획재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윤석열표 예산’ 대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공공임대주택이 정치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공공임대주택이란 국가나 지방정부, 공공기관이 예산이나 기금으로 마련해 임대하는 주택을 말한다.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이 2022년 예산안(본예산 기준)에서는 20조원 남짓이었는데 2023년에는 15조원을 겨우 넘는다. 약 5조7000억원이 깎였다(〈그림 1〉 참조).
공공임대주택은 크게 건설·매입·전세임대로 나뉘는데, 가장 많이 예산이 깎인 항목이 ‘매입임대’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지방정부(공사)가 기존 다가구주택이나 신축 주택을 사들여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약 3조797억원(33.6%)이 삭감됐다. LH나 지방공사가 전세계약을 체결해 재임대해주는 ‘전세임대’ 예산도 올해 대비 약 1조208억원(22.5%)이 사라졌다. 두 사업의 삭감액만 4조원이 넘는다.
지난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지 7일 만인 8월16일, 정부는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하면서 “도심 신축 매입약정 물량 및 전세임대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과 3주 뒤 제출한 예산안에서 매입임대와 전세임대 예산을 삭감한 것은 모순 아닐까?
이에 대해 이중기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지원과장은 “총량으로 보면 모순 같지만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매입임대 안에서 기존 주택이 아닌 신축 매입 비중을 늘리겠다는 의미다. 전세임대 역시 (총량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반지하 등 비정상 거처 거주자에 대한 이주 지원에 전세임대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와 닮은 윤석열식 공공주택 정책
반지하 참사 이후 서울시는 노후 공공임대주택들을 재정비하고 용적률을 높여서 23만 호를 새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비 기간에 기존 거주자들을 어떻게 할지 뚜렷한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지하 거주자가 이주할 경우 월세 20만원을 2년간 지원하는 바우처 정책도 발표했지만, 서울 내에서 이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액수다. 국토부는 반지하 거주자의 이주를 위해 5000만원을 무이자 융자하기로 했으나 대상은 5000가구에 그친다. 매입임대나 전세임대는 도심에 당장 대규모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하 거주자가 빠르게 이사하도록 도울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 공급 계획을 보면, 매입임대는 2022년 5만3045호 신규 공급하려던 것을 2023년에는 3만5670호만 새로 공급한다. 전세임대도 4만1500호에서 3만 호로 줄어든다.
매입·전세임대뿐 아니라 건설임대 예산도 줄었다.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 등 정권에 따라 복잡하게 나뉘어 있던 기존 임대주택을 문재인 정부 때 ‘통합공공임대’로 합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 신규 물량이 없어지면서 관련 예산이 약 1조7247억원 줄었다. 반면 통합공공임대 예산은 겨우 4373억원 늘었을 뿐이다. 통합공공임대 신규 공급은 2022년 7만1155호에서 2023년 3만5171호로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건설임대 예산은 총 1조4029억원 정도가 줄어들었다. 노후 공공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 예산도 약 2760억원(57.4%) 삭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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